1장. 일반적 고찰
1장에서는 ‘소유’와 ‘존재’를 단순한 재산의 문제로 보지 않고, 세계와 자기 자신을 대하는 근본 태도로 규정한다.
- 소유 양식은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방식으로 자아를 규정하는 태도이다.
- 존재 양식은 “나는 어떻게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인가”라는 현재 진행되는 활동과 관계, 내적 성장을 통해 자신을 규정하는 태도이다.
프롬은 현대 사회에서 언어 사용조차 소유 중심으로 변했다고 지적한다.
“알고 있다, 사랑한다, 믿는다” 같은 동사 중심 표현보다 “지식, 사랑, 신념을 가진 것”처럼 명사·소유 표현이 일반화되며, 인간 경험이 살아 있는 과정이 아니라 소유된 ‘것’으로 취급된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는 권위, 지식, 신념 등 여러 영역에서 소유/존재 양식을 대비한다.
- 권위: 소유 양식에서는 직위·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권위를 행사하지만, 존재 양식에서는 능력과 인격 자체가 권위의 근거가 된다.
- 지식: 소유 양식에서는 “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지식을 축적·저장된 재산처럼 취급하지만, 존재 양식에서는 “나는 안다”라는 표현처럼 이해·통찰이 지금 여기에서 작동하는 활동이다.
- 신념: 소유 양식의 신념은 집단에 의해 ‘획득된 확실한 답’을 붙잡는 것이고, 존재 양식의 신념은 스스로의 경험과 내적 확실성에 근거해 책임 있게 사는 태도이다.
프롬은 소유 중심의 실존 양식이 인간을 사물화하고, 관계를 죽은 것으로 만들며, 자유와 자율적 성장을 파괴한다고 보며, 존재 중심의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1장에서 기본 틀로 제시한다.
2장. 일상적 경험에서의 소유와 존재
2장에서는 철학적 구분을 일상생활 속 사례를 통해 구체화한다.
예1. 대화에서 소유 양식은 정보를 ‘가지려’ 하거나, 말의 주도권·우위를 확보하려는 태도이다.
존재 양식의 대화는 상대의 말을 온전히 듣고,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드러내며, 상호 이해와 변화를 목표로 하는 살아 있는 만남이다.
예2. 소유 양식의 사랑은 “연인/배우자를 내 사람으로 만든다”, “관계를 소유한다”는 의식을 통해 둘의 관계를 ‘공동 소유물’로 만들고, 종종 두 이기주의가 결합한 폐쇄적 집합체로 변질된다고 분석한다. 반대로 존재 양식의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돌봄, 책임, 존중, 이해의 활동 속에서 서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며, 상대를 통제하기보다 자유롭게 존재하도록 돕는 실천이다.
프롬은 인상적인 비유로 ‘푸른 유리’ 예를 든다.
푸른 유리가 푸르게 보이는 이유는, 유리가 푸른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색을 흡수하고 푸른색만 통과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비유를 통해 그는 존재적 양식은 무엇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방출하고 나누는가’에 의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즉, 인간도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생동하는 활동(사랑, 사유, 창조, 나눔)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논지를 전개한다.
프롬은 또한 소비문화·기술·성취 경쟁 등 현대인의 일상을 분석하면서, 더 많이 소유할수록 더 만족할 것이라는 믿음이 오히려 불안과 공허를 키운다고 비판하고, 존재 중심의 경험(창조, 놀이, 진정한 대화, 자발적 활동)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장.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그리고 에크하르트 수사의 저술에 나타난 소유와 존재
3장에서는 구약·신약 성서와 에크하르트 수사의 사상을 통해 소유와 존재의 대립이 종교 전통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고찰한다.
먼저 구약성서에서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은,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이 긴장 속에서 공존하는 삶을 산다고 해석한다.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은 노동력·몸까지 권력에 의해 ‘소유’당한 상태이다.
출애굽과 광야 경험은, 기존 소유 구조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연대, 자유,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배우는 과정으로 읽힌다.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보다 분명한 존재 중심의 삶을 요구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대표적으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구절은, 물질적 소유(빵)만으로는 인간이 충만하게 살 수 없으며, 진리·사랑·의미와 같은 존재 차원의 양식이 필수적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한 예수의 가난, 비폭력, 이웃 사랑, 원수 사랑, 재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자기확대와 축적이 아니라 내적 자유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존재를 완성하라는 요청으로 읽힌다.
프롬은 특히 중세 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 수사의 사상을 소유·존재 구분의 정점으로 본다.
에크하르트에게 신에게 이르는 길은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집착을 내려놓는 탈소유(무소유)의 길이다.
그는 영혼이 모든 소유와 이미지, 자기중심성을 비워낼 때 비로소 신과 하나 되는 존재의 충만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며, 프롬은 이를 극단적으로 존재적인 실존 양식의 종교적 표현으로 해석한다.
이처럼 3장은 유대-기독교 전통과 에크하르트의 사상을 통해, 역사적·종교적 맥락에서도 소유 중심 삶과 존재 중심 삶의 긴장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가장 급진적인 종교적 가르침은 존재 양식의 해방을 지향해 왔다고 정리한다.
4장. 소유적 실존양식
소유적 실존양식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곧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규정한다고 보는 태도이다. 재산, 지식, 명예, 권력, 심지어 사람 관계까지 ‘나의 것’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데서 자아의 가치와 안전감을 얻으려 한다.
이 양식에서 중요한 것은 취득과 보유, 그리고 그것을 지킬 권리이다. 한 번 손에 넣은 것은 가능한 한 오래, 가능한 한 많이 유지하고자 하며, 잃을 가능성은 곧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소유적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하고 방어적이 되기 쉽다.
프롬은 소유적 실존양식을 사유재산의 논리와 연결시킨다. 소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경쟁과 배제를 우선시하며, “내 것”과 “남의 것”을 분명히 나누고, 남을 이기거나 지배함으로써 자신을 확인하려는 경향을 강화한다. 그 결과 타인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비교와 경쟁, 이용의 대상으로 경험되기 쉽다.
소유적 실존양식에서는 과거의 축적물(돈, 명성, 직위, 학력, 경력, 기억 등)이 자신을 규정한다. “내가 무엇을 해내고 있는가”보다 “내가 무엇을 이미 가지고 있는가”, “내가 어떤 타이틀을 달고 있는가”가 중요해지며, 사람은 현재 살아있는 존재라기보다 과거의 성취와 소유의 집합으로 고착된다. 프롬은 이런 태도가 인간을 사물처럼 굳게 만들고, 자기 자신에게서도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5장. 존재적 실존양식
존재적 실존양식은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자아를 규정하는 태도이다. 여기서 핵심은 ‘가지고 있음’이 아니라, 사랑하고, 이해하고, 창조하고, 참여하고, 나누고, 변화하는 능동적 활동 그 자체이다.
존재적 실존양식에서 행복은 소유의 양이나 안정된 지위에서 오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타인과 진실하게 관계 맺으며,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되는 생동감과 충만감에서 온다. 그래서 존재적 인간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내가 무엇이 되어 가고 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프롬은 존재적 실존양식의 조건으로 독립, 자유, 비판적 이성을 든다. 외적 권위나 집단 규범에 맹목적으로 종속되는 대신,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책임을 지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존재적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자기 힘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지속적인 내적 활동 상태를 뜻한다.
또한 존재적 실존양식은 사랑과 나눔, 관심과 경청, 창조성과 자기 갱신으로 특징지어진다. 사람을 소유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관계 안에서 함께 변화하고자 한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살아있는 경험, 순간순간의 몰입과 만남이 중요한 가치가 된다. 프롬은 예수, 석가, 에크하르트, 마르크스 등 다양한 사상적 전통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상적 인간상이 바로 이 존재 중심의 삶이라고 본다.
6장. 소유와 존재의 그밖의 측면
6장에서는 두 실존양식의 차이가 몇 가지 구체적 영역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추가로 분석한다. 대표적으로 시간 경험, 언어, 인간관계, 죄와 도덕, 사회 구조와의 관계 등이다.
- 첫째, 시간 경험의 차이이다. 소유적 양식에서 인간은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를 불안 속에서 계산하며,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위해 희생되는 수단이 되기 쉽다. 이미 축적한 것과 앞으로 축적해야 할 것에 매달리느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있는 경험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반대로 존재적 양식에서는 현재가 중심이 된다. 사람은 지금 하는 활동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며, 과거와 미래는 현재의 의미 있는 삶을 위해 통합되는 배경으로 기능한다.
- 둘째, 언어와 사고의 차이이다. 소유적 실존양식에서는 명사, 소유 표현, 고정된 개념이 지배적이다. “지식을 가진다, 사랑을 소유한다”처럼 살아 있는 활동이 ‘것’으로 대상화된다. 존재적 실존양식에서는 동사, 과정, 관계가 중심이 된다. “사랑한다, 이해하고 있다, 듣고 있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며, 인간 경험을 흐르는 과정으로 이해하려 한다.
- 셋째, 죄와 도덕의 이해이다. 소유·권위주의적 구조에서 죄는 주로 ‘불복종’이다. 규칙과 권위를 어기는 행위 그 자체가 죄가 되며, 회개와 처벌, 새로운 복종이라는 구조가 반복된다. 반면 존재·비권위주의적 구조에서 죄는 소외, 즉 자기 자신과 타인, 자연, 궁극적 의미로부터 떨어져 나와 고립되는 상태이다. 여기서 도덕적 과제는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이성과 사랑을 최대한 실현하여 다시 연결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프롬은 모든 인간 안에 소유와 존재의 두 가능성이 모두 잠재해 있다고 본다. 다만 사회 구조와 가치, 교육, 경제 체제가 어느 쪽 경향을 강화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격과 삶의 방식이 결정적으로 달라진다고 본다. 소유지향 사회는 경쟁, 탐욕, 두려움, 적대감을 강화하며, 존재를 지향하는 사회는 나눔, 협력, 사랑, 창조성을 장려한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뿐 아니라 소련식 사회주의도 소유 중심의 구조를 공유한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과 사회가 존재 중심의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7장. 종교, 성격, 그리고 사회
프롬은 먼저 ‘종교’를 매우 넓은 의미로 재정의한다. 특정 교단·교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궁극적 의미와 헌신의 대상을 제공하는 세계관·가치 체계 전체를 종교라 부른다. 따라서 ‘종교 없는 사회’는 없으며, 자본주의 사회 역시 돈·성공·성취를 신격화한 일종의 세속 종교를 가지고 있는 셈이라고 본다.
그는 소유적 실존양식과 존재적 실존양식이 각기 다른 종교 형태와 결합한다고 말한다.
- 소유 중심의 종교에서는 신앙조차 “정통 교리를 소유하고, 올바른 교리와 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는 문제로 환원된다. 신은 두려움과 복종을 요구하는 절대 권위가 되고, 신앙은 살아 있는 관계라기보다 ‘옳은 교리와 규칙을 갖고 있는 상태’가 된다.
- 반대로 존재 중심의 종교에서는 신을 인격적 권력자로 보기보다, 사랑·진리·정의·생명성의 궁극적 상징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을 믿음의 소유물로 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서 그 가치를 구현하느냐이다. 종교적 인간은 두려움에서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유·이성·사랑을 최대한 실현하려는 존재로 이해된다.
프롬은 또한 성격 구조와 사회 구조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사회는 소유 중심의 경제·정치 구조를 통해 특정한 성격(순응적, 권위주의적, 소비 지향적 성격)을 만들어내고, 이렇게 형성된 성격은 다시 그 사회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재생산한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 변화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성격 구조와 ‘종교적 태도’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장. 인간의 변화를 위한 전제조건과 새로운 인간의 본질적 특성
8장은 “그렇다면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장이다. 프롬은 인간의 성격 변화를 위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 첫째, 인간이 처한 위기를 정신적·도덕적 위기로 인식하는 자각이 필요하다. 단순히 경제·기술 문제로 보는 한, 해결책도 더 많은 생산과 기술적 조정에 머무르고, 소유 중심 논리는 계속 유지된다. 자신이 소유 중심의 삶에 중독되어 있다는 자각, 이로 인해 인간성과 관계,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는 인식이 변화의 출발점이다.
- 둘째, 인간이 변화 가능하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인간의 본성을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고 규정하면, 소유 중심 사회는 필연적 구조가 되고 어떤 대안도 공상으로 치부된다. 프롬은 인간 안에 사랑과 연대, 이성, 창조성의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사회 조건을 바꾸면 이 잠재력이 주도적인 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위에서 그는 ‘새로운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열거한다. 핵심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가능한 한 모든 형태의 소유 집착을 기꺼이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필요한 물질은 사용하지만, 그것으로 자아를 규정하지 않는다.
- 존재의 힘(사랑, 이해, 상상력, 창조성)에 대한 신뢰를 가지며, 타인·자연과의 연대감을 강하게 느낀다.
- 자기 삶의 의미를 외부 권위나 소유물에서 찾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살고자 한다.
- 우상숭배(돈, 국가, 민족, 이념, 지도자 등을 절대화하는 태도)를 거부하고, 허위와 환상을 벗겨 내려고 한다.
- 자기도취를 극복하고,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며, 죽음과 한계를 의식하면서도 현재의 생을 충실히 살려 한다.
- 모든 생명체와 일체감을 느끼고, 자연을 지배·착취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로 대한다.
프롬에게 이 ‘새로운 인간’은 완전히 다른 종(種)이 아니라, 이미 역사 속에서 예수, 붓다, 에크하르트, 슈바이처 등 일부 인물과 운동 속에 부분적으로 구현되었던 가능성의 확대판이다. 그는 기술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인간적 유토피아를 향해 의식과 성격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9장. 새로운 사회의 특성
9장은 존재 중심의 새로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의 구조와 원리를 그린다. 프롬은 이것이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구체적 설계·실험·제도 개혁을 통해 점진적으로 만들어져야 할 과제라고 본다.
- 경제 영역에서 새로운 사회는 생산을 인간의 참된 욕구에 맞추어 조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성숙과 복지를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따라서 소비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체제를 넘어, 합리적 소비와 인간적 필요 중심의 생산을 지향해야 한다.
-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자연을 끝없이 착취하고 정복할 대상으로 보는 태도에서 벗어나, 상호 이해와 협력, 공존의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환경 파괴와 기술 만능주의를 그대로 둔 채 인간만 ‘더 윤리적으로’ 살 수는 없으며, 경제·기술 구조 자체가 생태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 사회관계와 정치 구조에서 연대와 참여가 중심이 된다. 상호 적대와 경쟁은 연대와 협력으로 대체되어야 하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들이 생활 현장에서 실제로 참여하고 결정에 관여하는 참여 민주주의가 중요해진다. 정치와 경제는 인간 발전에 종속되어야 하며, 인간은 다시금 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프롬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두 가지를 함께 강조한다. 한편으로는 존재 지향적 개인들이 늘어나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경제·정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개인만 바뀌어도, 구조만 바뀌어도 충분치 않으며, 둘이 동시에 상호작용하며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 유토피아를 위해 쏟아온 만큼의 에너지와 지성, 열정을 이제 인간적인 유토피아와 휴머니즘적 인간관계의 구축에 쏟을 때, 소유 중심 문명이 낳은 파국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가 가능하다고 결론짓는다.
독서 이후 생각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연히 여겨왔던 소유 가치들이 사실은 나를 더 억압하고 불안하게 만든다는 고찰은 소유와 존재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일평생 동안 어떤 것을 소유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욕망을 품으며 소유의 대상이 주가 된 세상에서 살아간다. 결국 내가 지배하지 못한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과 시기, 질투는 필연적이게 된다.
직업, 재산, 권위만이 아닌 내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소중한 친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우리는 종종 존재의 가치가 아닌 소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간다. 현대인의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발현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가 아닐까. 언젠가 모든 것을 잃고 남는 것이 나라는 존재 자체일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